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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Nayun Lee

 

씨위드 창시자, 독립 큐레이터, 미술 비평가

CEO of Seaweed, Independent curator, and an Art critic.

슈퍼메타포스트보더스_이행조건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 국가들은 서로 경쟁한다. 이를테면 다른 나라보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고 환경오염을 묵인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자본을 유치하여 이윤 증대를 약속한다. 각국 정부가 경쟁하면 자본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이용해 이윤을 챙긴다. 정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서려고 세금과 규제를 한없이 내린다. 결국 모든 나라가 패자가 된다. 경제 운영에 필요한 세수입과 규제를 놓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최대 패자는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노동자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

 

동네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사도, 빵집에서 빵 하나를 사도, 옷가게에서 양말 한 켤레를 사도 국경을 떠올리는 시대를 산다. 노르웨이에서 온 고등어, 미국산 밀가루와 말레이시아산 팜유가 들어있는 빵,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양말을 사고 집에 돌아와 덴마크산 철제가구와 중국산 가정용품들에 둘러싸여 앉았다. 세계화란 국경없이 지구를 하나로 여기는 게 아니라, 끊임 없이 국경을 생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위치를 가운데 두고,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 음식들이 얼마나 먼 거리를 움직여 도착했는지 가늠해본다. 사람인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물건들이 대량으로 움직이는 편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 아마 내 주변엔 이렇게 많은 이국의 것들이 놓여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대한민국 남단의 제주라는 섬에서 만든 재료로 만든 가구는 선택을 위한 경우의 수가 아예 없거나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제주에서도 고등어가 생산되고 심지어 유명하지만 노르웨이의 고등어가 더 싸고 기름지다. 이 가구와 식재료가 왜 그렇게 먼 거리를 화석연료를 쓰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싼값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질문하게 된다. 비행기와 배를 통해 불필요하게 먼 거리를 이동해 온 것들이 어떻게 국내나 지역의 생산물보다 저렴할 수 있고 가격경쟁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대부분의 답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로컬의 미래라는 책에 들어있다. 이 책의 일부에 인용된, 글로벌 경제의 최대 패자는 국경을 이동할 수 없는 노동자라는 말에 사로잡혔다. 가구도, 마늘도, 고등어도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하라고 만들어 둔 시스템은 자본이 넉넉한 기업에만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수익배분의 문제와 물가 등의 영향을 받아 그 나라에 갇히게 만든다.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 한 국가에 고립돼, 혹은 한 봉제공장에서 고립돼 일만 해야하는 삶은 그 노동자가 선택한 바가 아니다. 거대한 지구의 시스템이, 국가의 정책이, 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 전체를 규정짓고 만다.     

 

세계화를 내세우며 시작된 글로벌 경제가 소비지상주의로만 치닫고 있는 때, 예술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활동방식을 찾아가고 있을까? 국경을 넘는 일이 특정 시간을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꾸리는 노동자들에겐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시간과 관계없이 특수한 생산활동이나 아이디어로 생활을 이어가는 지적노동자인 예술가들에겐 아직은 선택의 문제로 남아있다. 그런 까닭에 예술가들의 국경이동률은 놀라울 만큼 낮은 수입에 비해 놀라울 만큼 높은 편이다. 물론 문화예술을 근거로 한 각종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이 이동률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직장이나 특정 국가나 특정 언어와 계약기간 등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예술가들은 국경이동에 있어 상대적으로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다. 이 예술가들이 어떤 선택을 하며 한 지역에 남거나 떠나거나 유랑하는지 살펴보는 일은 예술가들이 정착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유의미한 과정이 될 것이다.    

 

<슈퍼메타포스트보더스_이행조건>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위치(location)와 상황(situation)에 대해 말한다. 본인의 위치를 수시로, 혹은 간헐적으로 옮기는(transition) 이들에 대해 말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7명의 작가를 묶는 교집합을 굳이 하나 찾아야 한다면제주라는 대한민국 남단의 큰 섬이다. 기획자인 나를 포함, 이 전시에 연관된 8명은 모두 제주에서 나고 자랐거나, 가까운 인연으로 얽혀 있다. 사실 7명의 한국인은 모두 제주출생으로 봐야 하고, 독일인인 사라 오목크는 제주 출신으로 베를린에 거주하는 오봉준과 결혼해 오모스페이스를 공동운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전시는 작가들이 위치한 지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필요와 이해관계에 의해 국경의 구분과 지역의 구분, 마을의 구분 등이 생겼다. 본인이 태어난 한 지점(제주)에서 시작해 이 작가들이 어느 마을, 지역, 국가로 뻗어 나가고 연결됐는지, 그리고 종국엔 다시 어떻게 그 본래의 지점으로 되돌아와 연결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를 해보려 한다.

 

2019년 초에 나는 베를린, 파리, 제주, 런던에 있는 작가들에게 내 기획안을 전했다. 슈퍼메타포스트보더스라는 반은 장난 같고 과장되기 이를 데 없는 제목을 던졌고, 국경을 넘어 존재하고 작업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전시를 열지만,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 제목과 기획의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작가들이 존재하는 위치, 작품이 제작된 위치가 이미 많은 것을 담아 두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나는 작가들에게 작품을 독촉하는 대신, 본인들이 지금 작업을 하는 위치에 있게 된 까닭을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은 아래에 정리해둔다.

 

오봉준_독일, 베를린

학업을 쟈뷔르켄(Saarbrücken)이란 곳에서 하게 됐다. 가끔 독일인들도 어디냐고 묻곤 하는 작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가 학업 중에 작업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업이 끝나고 나서는 좀 더 큰 도시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때 ’Go육지(제주에서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 도시가 있는 한반도를 육지라고 부른다를 외쳤던 것과 비슷한 거 같다. 그때는 베를린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없이 그냥 벗어나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은 학업을 끝내고 제주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독일 생활이 지치기도 했었다. 그때 즈음에 사라와 만나게 되었다. 둘이 같이 베를린에 더 있어 보자 해서 지금 이곳에 있게 됐다.

 

허정_프랑스, 파리

한국에서 영상영화과를 다니면서 이야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단편영화들을 몇 편 만들었고 졸업 후에도 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만들다 보니 아직 인생의 경험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곳에서 작업하고 내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프랑스로 온 지 8년이 됐다. 유럽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던 내게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모든 갈등과 어려움들이 흥미로운 사건이었고 공부가 되었다.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그리고 이렇게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를 느끼면서사람을 작업의 주제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동료작가들과 협업을 즐기며 관객의 반응이 주제가 되는 작업을 하게 된 거다. 아티스트로서는 여기가 내 고향이 된 셈이다. 한국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던 곳은 아니어서 언젠가 다시 돌아가서 작업할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 이곳에서 최대한 사람들을 만나고 작업하며 지내는 중이다.

 

코닥_독일, 베를린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아직 제주와 그 외부에서 계속 자라는 중이다. 현재 베를린에 살고는 있지만, 나는 한국과 독일 두 곳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한 곳에 완전히 속해있지는 않다. 두 지역에서 나는 내부인이 되기도 하고 외부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도시를 거쳐 베를린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 선택지들 중에서 베를린은 나에게 편리하고 편안한 도시였다. 베를린에서 나는 독일 사회 안의 외국인이기보다도,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채로움 중의 하나로 지낼 수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취향이나 문화에 있어서 포용력이 넓고, 동시대미술에서도 주제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은 다른 많은 예술가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섬이라는 지리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멀리 있는 도시들을 동경했었다. ‘육지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나서도 나의 동경은 계속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더 멀리가면 만족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또 다른 문화와 생활을 경험하는 기회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멀리 올수록, 떠나온 곳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제는 제주와 베를린 어느 한 곳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두 곳을 왕래하면서 작업을 하려는 (과한) 욕심을 가지고 난 후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 베를린스러움과 제주스러움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둘의 사이가 얼마나 같은지, 다른지 계속 묻고 있는 중이다.

 

송유진_대한민국, 제주

졸업한 지는 약 2년이 된 제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두고 실험을 하는 중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쇼핑도, 홍보도, 공부도 인터넷이 된다면, 내가 어디에서 살든지 관계없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다. 다들 서울과 같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나는 꼭 서울에 가야만 내가 가진 고민들이 해결되는가?’란 의문이 들었다. 공기도 좋고, 가족과 친구를 자주 볼 수 있는 제주도가 좋기도 하고 서울로 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길이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지만, 나만의 방법으로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민겅-대한민국, 제주

겅은 제주도에서 두루 쓰이는 발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본명인 민경보다는 민겅이라 불리는 게 익숙했다. 나의 예명은 자연스럽게 민겅이 되었고, 더욱 나다운 이름이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좁디좁은 제주가 싫어 섬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제주만 한 곳이 없었다.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있고, 햇빛이 있다. 어렸을 적 뛰어놀던 배경이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제주가 싫으면서도 제주가 좋다. 애증도 결국 사랑이어서, 나는 제주에서 다양한 걸 느끼고, 많은 걸 해 내보고 싶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제주지만, 나는 따뜻한 햇볕이 그리워 제주로 돌아온다. 딱딱한 민경보다는 자연스럽게 민겅이라 불리는 고향이 좋다.

 

양화선_영국, 런던-대한민국, 서울

10년이 조금 안 된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났다. 2008년 대학원을 다니면서 입시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작업보다는 학생들의 입시에 더 열의를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끼는 제자들의 합격과 불합격에 따라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나라는 개인은 소진됐음을 느꼈다. 몸이 많이 망가졌고 정신이 흐트러졌다. 2월의 어느 추운 날 이 일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고 모아둔 돈과 전세금을 들고 영국으로 갔다. 1년 정도는 그동안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많은 시간을 그저 멍을 때리면서 보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하면서 무너진 체력을 다졌고 수영장을 규칙적으로 다니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다. 영어는 좀처럼 늘지 않았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이 나라에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진지하게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알바를 하면서 스피킹을 연습하고 학교에 진학했다. 한국에서 해왔던 작업이 아닌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던 터라 학교에 다니면서도 1년 정도는 이것저것 해보는 정도에 그쳤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학교는 철저하게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어떠한 작업의 양도 결과도 요구하지 않고 그 과정을 계속 보여주고 얘기하면 괜찮다고 했다. 졸업 전시에 아주 다른 두 작업을 전시했는데 운이 좋게 한 작품은 판매가 되었고 한 작품은 판화갤러리에서 상을 받아 판화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이것이 나를 계속 영국에 머물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부담을 덜 드리고 싶어 집을 빌려 관리를 하며 집값을 아끼고 알바를 쉬지 않고 했지만 중간에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제작했던 판화 작업이 판매되면서 생활이 유지가 되었다. 중간중간 비자 문제나 이사 문제로 작업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지만, 평생 작업하는데 1년쯤의 공백은 마음을 다지는 기간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렀고 그사이에 학교를 두 번 다녔고, 한국을 오가며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를 했고,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배웠다. 작년에 겪은 가족 일로 올해엔 한국에 들어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적응이 아직 덜 되어 그런지 모르겠다) 런던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한곳에 정착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조금 더 방랑자처럼 살고 싶다.

 

사라 오-목크

2013년 다른 3개 도시에서 공부한 뒤 베를린으로 건너가 마이스터슐러로 UDK 베를린에서 미디어아트 공부를 마쳤다. 베를린에 자리를 잡고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독일에는 예술가로 살기에 베를린보다 더 좋은 도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열린 느낌, 기회, 많은 전시회와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독특한 영감을 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남편 오봉준과 2016오모 아트스페이스를 설립한 이후, 나는 우리가 머물고 싶은 만큼 이곳에서 살고 일할 마음이 생겼고 의욕이 생겼다.

Original Text: Nayun Lee
English Translation: Yujin Song

Precondition for the Super-Meta-Post-Borders

“With capital globally mobile, moreover, governments are now in a race to the bottom with regard to corporate taxation and loopholes for personal taxation of high incomes. Each government aims to attract mobile capital by cutting taxes relative to others, relaxing the regulation, tolerating environmental pollution, and violating the labor laws. As they become more competitive, the capital takes all the advantages through “a race to the bottom”. The end result is that all governments become the loser since they miss the essential taxation and regulation to runs the economy. As a result of all of this, the laborer who couldn’t freely pass the borders is expected to bear the brunt of it.”
-Jeffrey Sachs, Economist.

We always keep in mind the borders as we live through this era. Whenever we go to the grocery stores to buy some food supplies, or bakery to buy some bread, or even when we buy socks, we have to think about the borders. After the shopping the mackerel from Norway, flours from the U.S.A, bread that used the palm oil from Indonesia, and socks made in Bangladesh, I found myself surrounded by the metal furniture from Denmark, and home appliances from China. May be the globalization is not taking the world as a whole but constantly discussing about the borders. Setting my locations at the center, I imagine how the products and foods comes all the way to get there. For financial efficiency, it is better to ship the products in bulk instead of me to move around the places to get those. That must be why I am surrounded by so many exotic items. In Jeju, it is almost impossible or too expensive to buy some furniture that were made by the materials in Jeju. Even though mackerels are also well caught from sea of Jeju and have reputation, the mackerels from Norway are cheaper and oilier. It brings me the question why the foods and furniture that traveled the longer distance and used more fossil fuels could be cheaper than the domestic products. How can it had overwhelming prices than the domestic products while traveling unnecessary and long distance by airplane and ship? In the book, “Local is our Future: Steps to an Economics of Happiness”, written by Helena Norberg-Hodge, holds the answers. ‘The laborer who couldn’t freely pass the borders is expected to bear the brunt of it.’ I was impressed by this selected quote in the book. It is strange that all the benefits from a system that were made to transport the furniture, garlic, mackerels goes to enterprise who has enough capital instead of the workers who works inside, locked inside the country because of the prices problems and improper profit distribution. While the whole world cries out for the globalization, workers are locked in a country or in a sewing factory where they had to work all day long. However, they had no choice. The gigantic Earth system, or the national policy, is prescribing the entire life of people in a small region.

Then, how the artist lives in and concerned about the world, crying out the globalization, where global economy propels toward the consumerism? Crossing the borders might be hard for the workers who earn a living through wages, rewards for their labors at a given time. On the contrary, the artist, white collars who earns a living through special productive activity or ideas, still had a choice. Therefore, artists are showing a shockingly higher rate of cross-border movement compared to their low incomes. It is true that all kinds of international art exchanged programs or art residency programs contributed to it. Also, artists have more flexibilities than any workers since they can keep their works with less impact by the languages, terms of a contract, jobs or nations. Therefore, it would be worth to look into the life of the artist who can freely choose where to stay or leave or to travel, if you are interested in their working conditions.

<Precondition for Super-Meta-Post-Borders> is talking about the locations and situations of the artists who frequently mobile locations and transitions. Every participant of this exhibition, seven artists and including the curator, are related to Jeju, the biggest island in South Korea. Some were born in Jeju, and some had an experience living in Jeju, and the others are tied to close relationship with it. Actually, all six Korean artists are born in Jeju, and Sarah Oh-Mock, the German married Bongjun Oh who comes from Jeju. And they are currently running oMo artspace together.

In other words, this exhibition features the locations of the artists. Borders, regions, and villages are divided for certain interests and purposes. This exhibition is to talk about how the artists gradually extend their field by crossing the borders of villages, regions, and countries, and connected to it. Also, how they come back to the starting point where they were born.

I pass the proposal for the exhibition to the artists in Berlin, Paris, Jeju, and London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2019. I show them the title, Super-Meta-Post-Borders which seems like kind of joke and completely exaggerate. Then, ask how they think about life, working and living while passing the borders. The artworks don’t have to relate to the exhibition title and the proposal directly since the locations of the artists and the artworks are already telling lots of stories. Instead of urging the artist to create the artwork, I ask them where they stand, and why they live and works in there. The answers are below.

Bongjun Oh: Berlin, German
I studied abroad at Saarbrücken. It is unknown, and a small city where the Germans would wonder about its location. I think it was a perfect place to create my work. However, after graduation, I thought I should better move to the big city, just like when I was a high school student, crying out “Go to the mainland.” In Jeju, people call the Korean Peninsula which includes the big cities like Seoul or Busan as a mainland. Without any information about Berlin, I just wish to escape from it. My original plan was to move back to my hometown, Jeju. At that time, I was very tired of living in German. And that was when I met Sarah. She suggested living in Berlin together. Since then, I am living in Berlin.

Jung huh: Paris, France
I found my interest in the story as I majored in Cinema, Video, and Image in Korea. I made a few short films and wanted to keep making a film that is based on my story after graduation. For that, I realized that I need more life experiences and understanding of humanity. I wanted to work in a new environment, and meet new people. For 8 years, I stayed in France, a completely new world for me who knew nothing about Europe. Every conflicts and difficulty was an exciting moment and enlightenment. I learn ‘how can people have various personality’, and ‘how they can have various perspective’. After that, I started to enjoy collaboration work with others. Also, the reactions of the audience become the main theme of my work. Even though I was born and raised in Korea, it was not the place where I started my artist career seriously. That is why France seems like my real hometown as an artist. But I hope I go back to Korea in the near future, and to start my artist career there. I am not sure how long I will stay here more, but I will keep trying to meet more people as possible and create my own work for the moment.

Kodac: Berlin, German
I was born and raised in Jeju, and keep growing in Jeju and out of its boundary. Currently, I am living in Berlin. I am related to both places but belong to none of them. In both places, I am an insider and the outsider at the same time. It has a lot of influence on my work. I come to Berlin after passing many cities. It was the most convenient and comfortable cities among the options. In Berlin, I was just one part of the community with various nationalities instead of a foreigner in German. Also, it is very open minded to different preference or culture, and has a wide spectrum in theme and genre of contemporary art. And that is why lots of artists are fascinated by Berlin.
In the past, I wanted to escape from geographic isolation, island, and admire the city life. Even after I graduated from Art University at the ‘mainland’, I still had a desire to move further and further. While wondering when I will be able to satisfy, I never hesitate to experience new and different cultures and lifestyles. However, the more I persistently move further, the more often I think about the place I left. I asked myself a lot of questions after I decided to work in both places since I don’t want to miss either. I keep comparing Jeju and Berlin. I wonder how they are same, how they are different, and how the style of both places are existing in this age.

Yujin Song: Jeju, Korea

I am still living and working in Jeju for 2 years since graduation. I am using myself as a guinea pig. I keep asking the question, can artist develop their artist career without moving into the capital, Seoul. I think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location lost its meaning. We can shop, advertise, study anywhere at any time through the Internet. But I cannot understand why others are keep telling me moving to Seoul is the only key to success. I love living in Jeju since it has better air condition, and I can meet my friends and my family more often. And I think Seoul is not the only answer. It seems like I just start the rough journey, but I hope I can find ‘my own ways’ and live ‘my own life’.

Heomins: Jeju, Korea
Geong is a very common sound in Jeju. Since when I was a little kid, many people called me as Mingeong instead of my official name, Minkyung. It becomes familiar to everyone including me to Mingeong. It naturally becomes my nickname, and fits me better. During my childhood I wish to escape from Jeju since it has too small community. However, none of the place seems better than Jeju. There is a nature, sunlight that only can found in here. The background scene of my childhood still gives me a lot of inspirations to my work. So I love and hate this place. I still want to feel more about Jeju, and do something more in Jeju. I can leave anytime, and I always come back to Jeju because of the warm sunlight in Jeju. I love my hometown where I can be called as Mingeong, more natural name.

Hwaseon Yang: London, UK and Seoul, Korea
Four months have passed since I return home after ten years living in the UK. There was a time when I expressed more enthusiasm for my student’s admission than my work. In 2008, I do part-time job at Art academy for college entrance while attending the graduate school. Spending most of my time there, I share their happiness and sadness according to their result, pass or fail. And I was very exhausted with it. My body becomes very ill, and my mind was very distracted.
One day in February, I decided to leave Korea and left to the UK with the deposit and the saving. For the first year in the UK, I spend most of my time to space out. I start to build up my stamina through jogging in the park. I go swimming regularly so that I can have more time to think. My English skill seldom improved, but I met a congenial friend. After that year, I decided to study abroad in the UK. I settled down to study English in earnest and practiced speaking during my part-time job. Finally, I enter University. On the first year at the University, I did many experiments to create another work that is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Korea. Sometimes I become impatient, but the school offers complete freedom to me. They never ask any result or amount of work. If I show them the process, everyone said it was okay. On senior exhibition, I displayed two different styles of work. Fortunately, one of them was sold, and the other one got a prize at a print gallery and was reproduced as a print. It triggers me to stay in London. I do my best to save money to lift a burden from my parents. I constantly do part-time jobs and become a house manager to save the rent fee. Whenever I had a hard economic time, the sold prints helps me to keep up my finances. Sometimes I couldn’t keep my work with the problem of visa and moving. Now, I can relax on those problems. Since art is my lifelong career It wasn’t’ hard to took it as a gap year to brace myself. As the old saying goes, time flies like an arrow. I already graduated two Universities, and held a few exhibitions in Korea, and learn a lot through watching others’ works. I returned to Korea because of the family business that happened last year. But for me, London is a place where I can go back at any time. (Maybe I am unfamiliar with Korean life yet.) I want to keep the decision on where to settle yet. I still want to live as a wanderer, moving Jeju and London back and forth.

Sarah Oh-Mock: Berlin, German
After studying in three different cities, she moved to Berlin in 2013. She finished her study of media art in the Fine Art academys of UDK Berlin. She take her place in Berlin, established media artist group, and held exhibitions. She realized the Berlin is the best cities for an artist to live a life and work in German. Open vibes, more opportunities, and gathering of various artist brings unique inspirations that are irreplaceable. Since 2016, as she established oMo artspace with her husband Bongjun Oh, she seems to have more attachment, and motivation to live and work in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