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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연, 자화상, 2019, 수채화와 콘테,39x54cm, 한국

Jooyeon Hong, self-portrait, 2019, watercolor painting and conte,39x54cm ,Korea

오 가비

Gaby O

바다를 좋아하고 햇빛도 좋아하고 추운 건 힘들고 맛있는 걸 사랑합니다

Love the sea, the sunlight, and good food, but not the cold weather.

instagram @o__gaby 

 

홍주연

Jooyeon Hong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다른 세계를 맞이하고, 더 나아가 아직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픈 홍주연입니다.

I want to experience the new world with my sight, hearing, and touching, and learn more about it.

instagram @jooyeonred

자화상 – 오 가비

 

 

가끔은 그저 주저앉는 것이 나의 태어난 모양새가 아닌가 고해본다.

요즘은 말이라는 것 없이도 매일을 다만 곱씹는 것이 나의 일인데,

자아성찰은 무지 아픈 것이어서 짊어지고는 일어설 수 없었다.

 

아버지 저를 낳을 때에는 수천만 마리의 정자가 꿈틀댔죠.

머리 없이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며 나아가는 정자들.

내가 수정된 연유는 이미 닿아 꼬리만 애써 부딪히는 정자들 사이로

실수로 머리 달린 정자가 흐느적흐느적 도달했기 때문이다.

꼴찌 돌연변이가 우연찮게 닿아 수정된 이후로

나는 꼴찌의 유전자를 새기고 난 것이 아닐까.

 

마음은 썩어 빠진 대로 곪아서,

사실은 매일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사실은 매일 도망침 없이 마주하는 게 아닌가 하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 무엇을 대체 마주하는지,

미궁에 빠진 지는 오래.

 

어쩔 수 없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아침이 쌓이면서

버리는 건 알량한 기준들이었다.

어쩌면 나를 구원해줄 수 있었을 것들을

매번 가져다 버리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알량한 삶을 살아오면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가도 가도 부끄럼뿐이었다던

서정주 시인의 시와 다른 점은 :

나는 그저 얼굴을 가리고

온 몸으로라도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부끄럼을 쥐어짜며

구토할 뿐이었다.

 

***

 

 저는 매번 두 발로 세상을 딛지를 못했어요. 한 발을 디디면 다른 한 발은 허공이나 진창에 빠져 있었죠. 말하자면 그런 것들 말이에요, 망상이나 후회라고 불리는 것들, 혹은 미래나 과거라고 불리는 것들에 말예요. 사실은 내 두 눈으로 보이는 것들도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거울을 보면 거북스럽게 툭 튀어나온 두 눈이 떼룩떼룩 구르고 있습니다. 벌레들의 그 징그러운 더듬이가 제 머리에도 달렸고요, 어리석은 발은 지네만큼 많고 몸은 미련하게도 꿈틀거립니다. 그득그득 욕심 가득한 등딱지도 얹었어요. 손에는 이기적이게도 큰 칼이 달려서 몸이 가려워도 긁을 수가 없답니다.

 끔찍하죠? 끔찍하죠. 아주 끔찍해 익숙해질 만 하면 구토가 나와요. 익숙해진다니, 끊임없이 도록도록 굴러다니는 눈동자에 어떻게 익숙해지나요. 거울을 피해 머리를 숙이더라도 바람에 발들이 사삭 움츠러들고 몸이 절편절편 꺾일 때는 끔찍해서, 스스로가 끔찍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소름 돋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눈동자가 까맣게, 아주 까맣게 번졌다가 다시 파드닥 빛을 찾아요. 끔찍한 벌레 소리, 스스스 움직이는 끔찍한 벌레 소리에 그만 죽을 것만 같아요. 제발 죽어버리고 말고 싶어요.

 그러나 숨을 막고 스스로 목을 죄기에는 이 칼손은 끈조차 잡을 수 없어요. 손목을 썰기에는 그만 살아남을까 무서워요. 비겁하죠. 저도 제 스스로가 참 끔찍하고 비겁해서, 사방에 비치는 거울의 저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요. 눈을 감고, 앉고, 쪼그려 누워 애써 잠을 청합니다.

 

 어두운 밤, 사방의 거울만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어요. 정면으로 마주한 거울에는 더듬이가 소름 돋게 번뜩거리고, 눈을 돌리니 끊이지 않는 제 형상에 툭 튀어나온 두 눈이 마치 죽은 벌레 같아, 기겁하며 뒤돌면 어느 새 거울이 새빨갛게 저를 향해 웃네요. 제 그 혼란스러운 톱니 같은 입이, 턱주가리가 내 비명과 함께 움직여대요.

 이건 끔찍한 거짓말이에요. 괴상한 가려움이 온 몸을 소름 돋게 감싸요. 눈앞의 절망으로부터 아무리 고개를 돌려대도 사방의 거울들이 다 나를 비웃고 내 온 벌레들이 꿈틀거려  

 차라리 울고 싶어요. 울고 싶어요. 그런데 이 커다란 눈으로는 눈물도 나지 않고 나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나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나는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정말 그만두고 싶어?

 고개를 듭니다. 무슨 소리를 들었어요. 누구세요, 누군가 있다면 누구든 저 좀 구해 주세요. 이 거울들을 좀 치워 주세요. 아니, 나를 좀 없애 주세요. 제발. 처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붉은 거울에 비친 기괴한 나와 마주칩니다. 자조합니다. 이제는 환청까지 듣고, 나는 얼마나 많이 망가진 걸까.

정말 그만두고 싶어?

 또 다시 들리는 소리에 홱 돌아보니 번뜩거리는 거울에 비친 입이, 인간의 얼굴이 말을 해요. 사방의 거울이 말을 해요. 사방에 떠다니는 입들이 웅웅 울리며 시끄럽게 소리쳐대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제발 그만둬요. 그만!

아니야! 아니에요.

 사실은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나도 괜찮고 싶어요, 나도 빛나고 싶어요. 나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멀쩡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살고 싶어요.

 울컥, 속이 터져나옵니다. 주르륵 눈물이 흘러요. 화들짝 놀라 앞을 보니 거울에 내 두 눈이, 인간의 형체를 한 두 눈이 비쳐요.

-…나아지고 있다.

 움직이는 입대로 말을 하니 내 턱주가리가, 붉은 입술이 되어 떨리고,

괜찮다.

 눈물이 떨어져 닿는 두 손이, 이 열 개의 손가락이 만져져요.

 손가락이라니, 떨리는 손가락들로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하나 하나 만져 봅니다. 두 눈썹, 눈꺼풀이 달린 눈들, , 피가 도는 이 입술 머리카락이 달리고 두 귀가 붙은 완연한 인간의 모습이에요. 팔과 다리가 달린 이 부족하고 미천한 인간. 죄를 지으면서도 끊임없이 울며 뉘우치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뛰는 심장을 누르고 흘러내리는 눈물들을 닦아냅니다. 이 두 팔로, 손으로 애써 닦아냅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눈물을 닦으며 만져지는 이 피부, 이 살결이 따스해요. 보드라워요.

 그런데도 계속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어딘가, 주변을 둘러보다 거울 속으로 애써 들여다 본 제 눈동자 그 사이로 누군가 주저앉아 울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내 사랑하는 사람이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다가갑니다. 그들의 심장 속에 또 누군가 울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좌절하여 오열하고 있습니다. 또 그 속에 그들의 사랑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모두가 각자 지쳐 울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울음들 사이에서 누군가 홀연히 일어섭니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는 눈물을 닦고 어딘가로 손을 내밉니다.

 내밀어지는 손을 잡고 다른 이가 일어서고, 그 이가 내미는 손에 또 다른 이가 일어서고, 내밀어지는 손들과 손들에 이내 모두가 일어섭니다.

 심장에서 심장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모두가 나를 바라봅니다. 말합니다. 한 명 한 명 입을 모아 한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우리는 나아갈 수 있어, 속삭입니다.

 

 이제 더 이상, 무엇도, 나를 죽음 속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두 발로 일어섭니다. 휘청이는 몸을 기댔다가 곧 가다듬고 중심을 세웁니다. 이 두 다리로 온전히 바로섭니다. 사방의 모두가 저를 보고 미소 짓습니다. 나는 거울을 마주합니다. 그 속으로 비치는 내게 웃으며 손을 내밉니다.

 거울들이 산산이 부서집니다.

 

 빛이 환합니다. 새들의 소리가 귀에 울립니다. 나는 일어나 나를 둘러싼 무엇들을 하나 하나 벽장으로 치웁니다. 빗자루를 들어 오랫동안 쌓인 먼지를 쓸어냅니다. 둘러보면, 아침의 빛깔이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커다란 창으로 바다가 넘실거리며 비칩니다.

 나는 두 발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 문고리를 돌리고,

 당신은 문고리를 돌린 그 손으로 문을 활짝 열고 반짝이는 태양을 온 몸으로 마주합니다. 바다로, 드넓은 바다의 짭쪼롬하면서 상쾌한 냄새를 맡으며, 나아갑니다.

 나아갑니다. 현재의 위에서, 이 자유 위에서, 이 모래 같은 순간들을 가로지르며.

홍주연, 자화상3, 2019, 수채화와 콘테, 39x54cm,한국

홍주연,자화상3,2019, 수채화와 콘테,39 x54cm,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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